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가난의 추억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218.♡.192.227) 작성일17-04-15 17:00 조회721회 댓글1건

본문

 

가난의 추억

 

종로5가에 있던 YWCA 안에 시에서 운영하던 도서관이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들고 그곳으로 향한다.

 

막 군대를 제대한 무렵이니 한창이던 시절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소위 변또에 담긴 밥을 반으로 나누고 맥스웰 하우스 커피 병에 가득 든 김치와 점심을 먹는다.

 

왕후(王侯)의 밥에 걸인의 찬 이지만 꿀맛 같은 점심이다. 다 먹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저녁을 위해 절반은 남겨두어야 한다.

 

식사가 끝나면 삼삼오오 자판기에 둘러서서 커피를 마시지만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커피를 못 마시는게 아니고 사먹을 돈이 없어서였다. 가난은 불편한 것 일뿐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사건 이전 까지는 말이다.

 

도서관이 끝난 시간, 주섬주섬 책을 싸들고 습관적으로 주머니 속 토큰을 확인하는데 토큰이 없어졌다. 그 먼 길을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매표소 주변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나는 어렵게 말을 건넸다. 연세가 지긋한 그분과는 수개월 보아왔지만 한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버스비 좀 빌려주시면 않되나요?”

 

물끄러미 바라본다. 짧은 순간의 결정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여기는 학생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어서 빌려 줄 수가 없어”

 

젊은 사람이, 그것도 수개월째 드나드는 학생이 차비 좀 빌려 달라는데 거절할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마 그분도 그날의 결정이 두고 두고 마음에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빌려 줄 수 없다는데.. 뒤 돌아 서는데 뒷통수가 후끈거린다.

버스비도 없으면서 종로2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던 이유를 모르겠다. 늦은 시간 그곳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몇이 서있다. 조금 더 지체하면 버스는 끊어지고 정류장에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무턱대고 들이댔다.

 

“저기 죄송하지만 버스비 좀 빌려 주실 수 있나요”

하필이면 그때 버스가 올게 무엇인가? 잠시 망설이던 아가씨가 버스에 낼름 올라 타는 게 아닌가. 올려다보던 얼굴이 화끈거렸다.

 

가난은 불편한 것 일뿐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내게 있어 가난은 불편하기도 부끄럽기도 한 것이었다.

 

불편은 감수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부끄러움은 감당할 자신이 없던 나는 종로 1가 쪽으로 걸었다. 피마 골목을 지나치는데 고기 굽는 냄새가 콧속으로 훅하고 들어왔다. 발걸음을 멈추고 포장마차 안을 들여 다 보았다.

삼삼오오 앉아 술을 마시는 그들이 부러웠지만 하루하루가 절박했던 내처지에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누군가는 그런 상황에서 반드시 크게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꿈도 야망도 컸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엉뚱하게 언젠가는 친구들과 꼭 포장마차에서 술을 한잔 하겠다는 각오만 다졌을 뿐이니 천상 모태서민이었던 모양이다.

모태서민인 것을 자학하는 것이 아니다. 명리를 따르지 않아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속박에서 벗어났다면 득도한 것이 아니겠는가?

 

 

어쨓든,

 

한강인도교에 다다르자 거리를 통행하는 차량이 눈에 띄게 줄었고, 가로등도 몇 개만 밝혀 주변이 어두웠다.

마치 하얀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 눈마저 허옇게 덮힌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칼날 같다. 칼바람에 얼굴이 갈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뛰어 다리를 건넜다.

 

사육신 묘지 부근에 이르러 가쁜  숨이 조금 진정되었다.

 

노량진 달동네의 겨울은 인적이 빨리 끊긴다. 비탈길 중턱, 허술하지만 그래도 비 바람을 막아주는 내 방이 있는 곳이다.

 

부엌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방바닥이 얼음장이다. 이 야심한 시간에 어디서 연탄불을 구할까 싶다. 연탄불을 피우려했던 이유는 추위도 추위였지만 사실은 라면을 끓여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주인집 동태를 살펴보니 안방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나온다.

잠시 마당에서 서성이다가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들겼다. 방안에서 나오는 사람은 아주머니가 아닌 주인집 딸이다.

 

그녀는 당시 여상을 졸업하고 농협에 다녔는데 나와 한번도 말을 섞은 적이 없는 사이였다.

 

“저.. 죄송하지만 연탄불 좀..”

 

“아 연탄불이 꺼졌나요?”

“예, 라면이라도 하나 삶을까 싶어서요”

“예,불 제가 빼 드릴께요”

불이 붙은 연탄을 받아 아궁이에 넣고 냄비를 올리고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누구도 두드린 적이 없는 부엌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문을 열고 보니 주인집 딸이 무엇인가를 들고 왔다.

“제가 가스렌지에 라면을 끓였어요”

 

살을 에는듯한 추위였지만 방으로 들어오라는 말은 못하고 쟁반을 냉큼 받으며,

“이거 죄송스러워서...”

“연탄불 붙을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잖아요”

 

그녀는 돌아가고 양은냄비를 열어보니 계란까지 넣은 라면과 잘 익은 총각김치가 먹음직스러웠다.

 

3시간의 풍찬노숙후, 후후 불어가며 먹는 라면 맛을 세상 어떤 맛과 비길 것인가?.

정신없이 라면을 먹는데 속에서 뭔가가 울컥 올라왔다. 감정을 추스르고 라면을 거의 먹을 무렵 또다시 부엌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가 김이 피어오르는 머그컵을 내게 건넨다. 아무 말 없이 그녀가 건네는 컵을 받았다. 뭐라고 딱히 할 말이 없었고, 목구멍에서 말이 걸려 넘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난히 추운 어느 날 아침이었다.

공동 화장실에 가기위해 부엌문을 나섰는데 하늘이 핑그르 돌더니 다리에서 힘이 쭉 빠진다.  연탄가스를 마신 것이다.

 

미세하게 의식이 있을 뿐 주변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누군가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소리에 눈을 떴다.

“병원 않가도 돼요 찬바람 맞으면 나을거예요”

출근하던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제가 병원비 드릴테니 병원 가셔야 해요”

병원비가 없는 것을 들킨 것 같아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결국 병원을 가지 않은 채 집에 누워 하루를 보냈다. 저승 문턱까지 갔다 왔지만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있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능력도 닿지 않으면서 쓸데없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건 아닌가? 막노동으로 조금 벌어놓은 돈도 떨어져 가는데 한가하게 공부나 하고 있을 상황인가? 아니야 그래도 공부를 해야해 ,그런데 무슨 돈으로.. 그래 일단은 돈을 벌어야겠다. 그리고 다시 시작 하는 거야’

 

불안한 미래와 냉혹한 현실을 넘나들다가 나는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쓰레기더미 속에서 고장 난 유모차와 사과궤짝을 주워와 엉덩이 돌리기에도 쉽지않은 좁은 부엌에서 손수레를 만들었다.

맥스웰 커피 한통, 계란 한판을 손수레에 싫고 이른 새벽 노량진 역으로 향했다. 바퀴의 축이 안정되지 않으니 바퀴가 덜컹거린다. 노량진역에 도착했을 때는 계란 반판이 깨져 있었다.

 

가만히 서있으면 발이 깨질듯이 아파왔다. 발을 동동 구르며 손님을 기다렸지만 1시간 동안 모닝 커피를 사는 사람이 없었다.

 

재래시장과 명품을 파는 거리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재래시장은 호객행위를 하지만 명품을 파는 거리에서는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 호객행위라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입에서 커피 한잔 하세요라는 말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커피 한잔 주세요”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종이컵에 물과 커피를 붓고 계란을 통째로 깨서 넣자 커피가 조금 넘쳐 흘렀다.

커피를 받아든 첫 손님이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마디 한다.

 

“모닝 커피는 노란자만 넣는 거요 이렇게 흰자까지 넣으면 커피가 식어서 않되지”

 

이미 내손은 커피 값으로 받은 500원을 꺼내기 위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커피 값 돌려 드릴께요”

 

“됐어요 젊은이가 모를까봐 알려 준거요”

 

그렇게 아침나절까지 커피 한잔을 팔았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일을 끌고 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업 당일 과감하게 명품 커피숖을 정리해버렸다.

 

돌아서면 배고프고 아무데도 기댈 곳 없던 그해 겨울, 춥기는 또 왜 그리도 추웠는지..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아쉬운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그토록 절박한 심정으로 장사에 매진했다면 지금쯤 많은 돈을 벌었을까?

 

연탄불을 빼주고 가스 불에 라면을 끓여주었던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에게 관심이 있었을까? 아니면 가난한 취업준비생을 동정했던 것일까?

하지만 남녀 사이로 발전하려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셔야 하는 법이다. 한마디로 밥 사먹고 커피 사먹을 돈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당시 외웠던 영어 문장이 생각난다.

 

TIP TOE STANCE

 

나는 그때 발끝으로 겨우 땅을 디디고 살았다.

 

 

 

 

 

가난의 추억

 

종로5가에 있던 YWCA 안에 시에서 운영하던 도서관이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들고 그곳으로 향한다.

 

막 군대를 제대한 무렵이니 한창이던 시절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소위 변또에 담긴 밥을 반으로 나누고 맥스웰 하우스 커피 병에 가득 든 김치와 점심을 먹는다.

 

왕후(王侯)의 밥에 걸인의 찬 이지만 꿀맛 같은 점심이다. 다 먹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저녁을 위해 절반은 남겨두어야 한다.

 

식사가 끝나면 삼삼오오 자판기에 둘러서서 커피를 마시지만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커피를 못 마시는게 아니고 사먹을 돈이 없어서였다. 가난은 불편한 것 일뿐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사건 이전 까지는 말이다.

 

도서관이 끝난 시간, 주섬주섬 책을 싸들고 습관적으로 주머니 속 토큰을 확인하는데 토큰이 없어졌다. 그 먼 길을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매표소 주변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나는 어렵게 말을 건넸다. 연세가 지긋한 그분과는 수개월 보아왔지만 한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버스비 좀 빌려주시면 않되나요?”

 

물끄러미 바라본다. 짧은 순간의 결정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여기는 학생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어서 빌려 줄 수가 없어”

 

젊은 사람이, 그것도 수개월째 드나드는 학생이 차비 좀 빌려 달라는데 거절할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마 그분도 그날의 결정이 두고 두고 마음에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빌려 줄 수 없다는데.. 뒤 돌아 서는데 뒷통수가 후끈거린다.

버스비도 없으면서 종로2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던 이유를 모르겠다. 늦은 시간 그곳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몇이 서있다. 조금 더 지체하면 버스는 끊어지고 정류장에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무턱대고 들이댔다.

 

“저기 죄송하지만 버스비 좀 빌려 주실 수 있나요”

하필이면 그때 버스가 올게 무엇인가? 잠시 망설이던 아가씨가 버스에 낼름 올라 타는 게 아닌가. 올려다보던 얼굴이 화끈거렸다.

 

가난은 불편한 것 일뿐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내게 있어 가난은 불편하기도 부끄럽기도 한 것이었다.

 

불편은 감수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부끄러움은 감당할 자신이 없던 나는 종로 1가 쪽으로 걸었다. 피마 골목을 지나치는데 고기 굽는 냄새가 콧속으로 훅하고 들어왔다. 발걸음을 멈추고 포장마차 안을 들여 다 보았다.

삼삼오오 앉아 술을 마시는 그들이 부러웠지만 하루하루가 절박했던 내처지에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누군가는 그런 상황에서 반드시 크게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꿈도 야망도 컸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엉뚱하게 언젠가는 친구들과 꼭 포장마차에서 술을 한잔 하겠다는 각오만 다졌을 뿐이니 천상 모태서민이었던 모양이다.

모태서민인 것을 자학하는 것이 아니다. 명리를 따르지 않아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속박에서 벗어났다면 득도한 것이 아니겠는가?

 

 

어쨓든,

 

한강인도교에 다다르자 거리를 통행하는 차량이 눈에 띄게 줄었고, 가로등도 몇 개만 밝혀 주변이 어두웠다.

마치 하얀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 눈마저 허옇게 덮힌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칼날 같다. 칼바람에 얼굴이 갈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뛰어 다리를 건넜다.

 

사육신 묘지 부근에 이르러 가쁜  숨이 조금 진정되었다.

 

노량진 달동네의 겨울은 인적이 빨리 끊긴다. 비탈길 중턱, 허술하지만 그래도 비 바람을 막아주는 내 방이 있는 곳이다.

 

부엌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방바닥이 얼음장이다. 이 야심한 시간에 어디서 연탄불을 구할까 싶다. 연탄불을 피우려했던 이유는 추위도 추위였지만 사실은 라면을 끓여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주인집 동태를 살펴보니 안방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나온다.

잠시 마당에서 서성이다가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들겼다. 방안에서 나오는 사람은 아주머니가 아닌 주인집 딸이다.

 

그녀는 당시 여상을 졸업하고 농협에 다녔는데 나와 한번도 말을 섞은 적이 없는 사이였다.

 

“저.. 죄송하지만 연탄불 좀..”

 

“아 연탄불이 꺼졌나요?”

“예, 라면이라도 하나 삶을까 싶어서요”

댓글목록

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아이피 218.♡.192.227 작성일

이계찬 그땐 그랫었지요.
소싯적  생각하며  재밋게 잘 읽었습니다.
작가 선생님!!!   
[ 2016-12-19 10:59:43 ]
 
 

김학도 춥고 배고팠던 시절의 추억이 물씬거리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생각이 배여있고 추억을 떠올릴줄 아는 훈훈한 인간미가 느껴지네요.
언제 이글을 안주로 소주한잔 해요.진 작가님!!!   
[ 2016-12-19 17:28:43 ]
 
 

송인국  저보다는 연배시지만 공감이 가는 내용이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2016-12-22 09:2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