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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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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218.♡.192.227) 작성일17-04-15 16:32 조회7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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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나는 동해안 해안선을 지키는 보초병이었다. 낮에 잠을 자고 밤에 보초를 서는데, 보초라는게 참호안에 2인이 들어가 밤새도록 공허한 해안선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바람을 막아주는 초소안에서 보초를 서기 때문에 바람을 피할 수가 있지만 우리가 보초를 섰던 참호는 사정없이 몰아치는 겨울바람을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었고, 여름이면 군복까지 뚫고 들어오는 바닷가의 독한 모기에 온몸이 벌집이 되곤하였다.

 

시간마저 얼어붙은듯 도무지 아침이 올것같지 않았던 그 춥고도 길었던 겨울밤내내 얼마나 간절히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는지..

 

뼈속까지 파고드는 냉기는 그래도 참을만 했지만 그추위속에서도 쏟아지는 잠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어떨때는 완전히 무감각한 상태로 눈을 뜬채로 잠이 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나만의 경험이 아니었을 것이다.

 

해안선과 맞닿은 하늘이 엷게 오렌지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곧이어 하늘전체가 오렌지빛으로 물들며 일출이 시작된다.

 

이때가 되면 다른 참호에서 근무를 하였던 동료들과 만나 같이 내무반으로 철수하며 밤새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가끔 코나 눈주위가 시퍼렇게 멍이들어 전날과 얼굴이 변형된 동료들을 보기도 한다.

 

나도 몇 번 경험하였지만 선채로 꾸벅거리며 졸다가 앞에 설치해놓은 사각무전기에 얼굴을 부딫쳐 생긴 멍자국이다.

 

보통의 경우 한군데 멍이드는데 심한 친구는 서너군데 멍이 든 친구도 있고, 2인1조근무자 2명이 다 멍이 든 것을 본적도 있다.

 

겪어 보지않은 사람은 얼굴을 부딫치는 순간의 공포심을 알지못한다. 그짧은 순간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는 것은 ‘간첩에게 맞았다’ 라는 생각외에 떠오르는 생각이 없다.

 

잠시후 정신을 차리면 안도의 한숨을 쉬지만, 통증이 엄습해오면 이유없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이런 모습들은 참으로 우스운 상황이 틀림이 없지만 아무도 웃는 사람은 없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고통을 겪었기에 그들은 서로에게 오히려 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그때 보았던 바다와 파도소리가 낭만스러울수가 있겠는가?

고통의 바다였고, 파도소리는 견딜 수 없는 소음이었다. 제대하면 바다에는 절대로 가지않겠다고 마음먹었던 이유다.

 

하지만 막상 제대후에 여름휴가지로 가장 많이 찾은곳이 동해안 바닷가였다.

어떨때는 꿈속에서조차 바다를 볼때가 있다. 꿈속에서 나는 그바다를 지키는 보초병이 되어있다. 군대를 갔다가 왔다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절규를 해도 선임하사는 군대를 2번 가는 것으로 법이 바뀌었다며 묵살한다.

아! 꿈속에서의 그 처절한 심정이란.... 악몽도 그런 악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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