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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출사표/후기

달리기의 의미와 그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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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동명 (223.♡.74.200) 작성일24-10-21 13:05 조회31회 댓글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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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갑작스런 무게가 세상을 누르듯 공기를 짓눌렀다. 내 몸이 허공에서 사라지는 듯, 압축된 공포가 차가운 땀방울이 되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시야가 흐려지고, 주변이 어두워졌다. 몸이 비정상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심장은 요동치고 세상은 빙글빙글 돌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고, 세상이 멈춘듯 했다.

“왜 그래?”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운전 중이었다. 옆자리에는 아내가, 뒷자리에는 신나게 떠드는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장모님 댁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 안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집어 삼킨 것이다.

차를 힘겹게 세웠다. 아내가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나는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숨을 쉴 수가 없어…” 공포가 나를 마비시켰다. 심장은 터질 듯 뛰었고, 머릿속은 텅 비어갔다. 심장마비인가, 뇌졸중인가.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아내가 운전대를 잡고, 나는 숨을 고르려 했지만,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엠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를 마친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산소 포화도와 심박수 모두 정상이네요.”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여전히 떨렸고, 숨이 막히는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병원을 나섰지만, 불안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그날 이후 내 일상에 균열이 생겼다. 일하다가도 갑작스러운 공포가 찾아왔고, 숨이 막히며 머리가 얼어붙는 듯한 순간이 이어졌다. 병원에 갔지만 결과는 언제나 똑같았다. “문제 없습니다.” 몇 번의 응급실행, 그리고 마침내 받은 진단은 ‘공황장애’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두려움은 나를 집어삼키려 했고, 나는 그 속에서 버텨야 했다. 이전의 내 삶은 주도적이었고, 예민한 성격이지만 낙천적인 편이었다. 스트레스 관리도 나름 잘 해왔다 생각한다. 꾸준히 운동을 했고, 인간관계도 좋았으며 평범하게 하루를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만족스러운 삶과는 달리 공황은 나를 찾아왔고, 그때부터 나는 그 괴물을 떨쳐내기 위한 사투가 시작 되었다.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고, 마음 관리를 위해 애썼다. 일과 운동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5년이 지났다. 처음 공황을 겪은 이후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아마도 첫 6개월 정도였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그 발작의 재발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이었다. 다행히 세 번의 큰 발작 이후 더 이상 극단적인 공황 발작은 없었지만, 마치 심한 감기가 지나간 뒤에 남아 있는 잔기침처럼 크고 작은 불안의 파도가 나를 꾸준히 괴롭혔다. 발작이 올 것 같은 순간이 때때로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심장이 빠르게 뛰며 식은땀이 났다. 때로는 아무 이유도 없이 숨이 막힐 듯한 공포가 나를 휘감았다.

그 무렵, 공포라는 감정은 내 일상 속에 깊게 박힌 오래된 상처처럼 남아 있었다. 그 상처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조금만 건드려도 깊이 쓰라리고 다시 벌어질 것 같은 고통을 주었다. 공황장애를 처음 겪었을 때 느꼈던 그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흐릿해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내가 두려움을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어디선가 은밀히 존재하고 있었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문득 고개를 내밀며 나를 위협했다. 공황의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게 한다고들 한다. 그때 느꼈던 죽음의 임박함은 지금도 가끔씩 떠오른다. 실제로 죽음의 순간이 그렇게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 강렬한 감각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런 나에게 다시 숨통을 틔워준 것은 바로 달리기였다. 달리기는 처음에 그리 반갑지 않은 운동이었다. 공황 발작을 겪을 때의 증상, 즉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그 느낌이 달리기와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달릴 때 느끼는 호흡의 고통과 심장의 요동은 공황 상태의 감각과 비슷하게 다가왔고, 그래서 그것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달리기의 중요한 차이는 그것이 내가 의도하고 선택한 행동이라는 점이었다. 공황 발작이 갑작스레 찾아와 나를 덮칠 때와 달리, 달리기에서의 빠른 호흡과 심박은 내가 스스로 통제하고 있었다. 이 차이를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속도를 높이기만 해도 공황이 다시 찾아올 것 같아 무척 불안했다. 조금만 숨이 차오르면 가슴이 답답해졌고, 심장이 마구 뛰며 예전의 그 공포스러운 순간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다. “이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고통이야. 내가 선택한 거야.” 그 생각이 나를 조금씩 안정시켰고, 천천히 속도를 조절하며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내 몸의 고통을 내가 결정하고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은 공황과는 다른 경험이었다. 달리기를 하면서 나는 점차 그 두려움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숨이 차오를 때는 잠시 멈춰서 호흡을 고르고, 다시 뛸 수 있을 만큼 속도를 조절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는 내 몸과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공황을 이겨내기 위한 도구였지만, 어느 순간 그것은 내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 나는 달리기 속에서 내가 마주하는 두려움이 더 이상 나를 좌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속도 안에서 달리면, 그 두려움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달리기는 나를 괴롭히던 공포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선택한 도전이 되었고, 나는 그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공포는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하지만, 더 이상 그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는 않았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듯, 달리기를 하는 이유와 목적도 제각각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기록을 세우기 위해 달리고, 어떤 사람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달린다. 하지만 나에게 달리기는 속도도, 경쟁도, 그리고 어쩌면 피니시 라인도 중요치가 않다. 나는 단순히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달리는 행위가 좋다. 걷다가  달리다가 숨이 차오르면 멈춰서 숨을 고르고, 힘이 나면 다시 천천히 달린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여유를 느끼며, 걸음 걸음 사이에 숨겨진 자유를 만끽한다.

달리기는 나에게 가속의 의미가 아닌 여유와 균형의 의미다. 나는 그 과정에서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내 삶을 조금 더 확장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내 안에 남아 있는 두려움과 고통을 마주했지만, 그와 동시에 그 감정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법도 터득했다. 이제 달리기는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달리기도 좋지만 삶에는 더 중요한 일과 행복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것을 깨닳았을 때 나는 달리기 속에서 자유를 찾았고 비로소 달리기를 그리고 내 삶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댓글목록

김명선님의 댓글

김명선 아이피 112.♡.226.253 작성일

동명 회원님,, 힘든 시기가 있었군요..
그때 같이 달리며, 바위 이야기, 죽음에 대힌 이야기.. 꽤 흥미롭고 공감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죽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우린 하루하루 주어진 이 시간들을 더 쫀쫀하게 채워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내일 당장 세상이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유명한 이야기 처럼,
살 수 있다는 생각만 하다가 죽고 싶진 않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거야 라고 말하는 말기암에 걸린 소설 속 여주인공처럼...

한 발 한 발 채워지는 그런 달리기를.. 응원합니다♡
멋진 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동명님의 댓글

이동명 댓글의 댓글 아이피 211.♡.206.15 작성일

명선팀장님의 글을 통해서 저도 많이 배움을 얻고 있습니다.  부족하나마 저도 제 경험(?)을 끄적여봤어요. 힘들다고 하지만 이미 달리기를 즐기고 비워진만큼 채워내는 경험을 하고 있으신듯 해서 멋지고 존경스럽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응원할게요~

홍하현님의 댓글

홍하현 아이피 118.♡.81.49 작성일

나의 취약함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이겨낸 모습이 너무나 감동입니다! 용기있는 동명님입니다!!ㅠㅠ

이동명님의 댓글

이동명 댓글의 댓글 아이피 211.♡.206.15 작성일

감사합니다~ :) 팀장님도 달리기를 통해서 무언가를 채우고 또 무언가를 덜어내시길 바래요~

김지훈님의 댓글

김지훈 아이피 211.♡.227.208 작성일

동명님 언제나 응원합니다. 늘 밝지만 그런아픔이 있었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춘천마라톤끝나고 산에도 같이가요^^

이동명님의 댓글

이동명 댓글의 댓글 아이피 211.♡.206.15 작성일

응원 감사해요~ 아픔이라기보단 경험 정도로 해둘게요 ㅎㅎ 산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이번엔 삼성산 아니라 관악산 가시죠

김정옥님의 댓글

김정옥 아이피 118.♡.48.231 작성일

달리기로 상황을 주도적으로 바꾸시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각자마다 달리는 이유가 모두 다릅니다. 동명님의 상황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풀코스 목표로 하신다고 해서 러닝 독려를 했는데 죄송합니다.

글을 너무 잘 쓰십니다. 저도 삶의 큰 틀에서는 균형, 조화를 위해 달리기를 합니다. 그 와중에 러닝 목표도 나름 있지만요.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이동명님의 댓글

이동명 댓글의 댓글 아이피 211.♡.206.15 작성일

ㅎㅎ 죄송이라뇨. 제 글이 좀 무거웠나봅니다. 러닝 독려 해주셔야죠.~  풀코스도 당연히 목표하고 있습니다. 춘마에 동마까지 신청되어있는걸요. 지금은 아무치도  않습니다. 좀 된 얘기죠. 응원 감사합니다~